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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31 민 이야기

넌 왜 저런 애랑 같이 다녀?


열아홉, 망나니 중에 대마왕 망나니였던 시절. 누군가 나와 함께 다니는 민에게 그렇게 물었다고 했다. 민은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깔깔대며 하는 친구였다.


나는 처음에 민과 같은 반이 된 게 달갑지 않았다. 1학년 때, 민과 나는 동아리 활동이 엄하다고 소문난 댄스부 동기였다. 하지만 민은 1학기를 채우지 않고 동아리를 탈퇴했다. 매 주말마다 춤 연습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 그때의 우리에게 댄스부 활동은 거의 학교생활 전부와 다름없었으니 그런 식으로 탈퇴한 민이 고와 보일 리 없었다. 그런 민과 같은 반이 된 것도 모자라 성까지 '박', '백'으로 붙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뚱하니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민이 쪽지를 건네왔다.


백인경! 나 너랑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언제 날 잡고 술 마실래?


원래 애들은 나쁜 짓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민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다. 민의 자취방은 지루한 야간자습시간을 때우기 최고의 장소였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 구석에 있던 책상과 기타. 그 앞에 얌전하게 쌓여있는 이불들. 거기에 등을 기대고 누워 형편없이 기타를 둥기둥기 뜯으며 우리는 많은 얘기를 했다. 나는 꼭 시인이 될 거야. 하면 너는 꼭 시인이 될 거야. 하고 대답해 주었다.


내가 꼭 가고 싶었던 대학의 최종 수시 발표일, 저녁을 먹기 전, 나는 민에게 결과를 대신 확인해달라고 했다.


합격이면 쿨피스 먹을래? 불합격이면 후랑크 먹을래? 이렇게 말해 줘야 해.


십 분 후, 민은 제가 먼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결과를 알려주었다.


백인경... 오늘 술 먹을래?


나는 벤치로 뛰어가 엉엉 울었고 뒤쫓아온 민이 나를 자취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불을 깔아주고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한참이나 울다 잠들었나 보다. 민이 나를 깨웠다. 민의 손에는 '북한 빼고 남한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 이라는 부어치킨이 들려있었다.


한 마리 살랬는데, 돈이 모자라서. 반 마리 밖에 못 샀다.


나는 지금도 그날 우리가 그렁그렁 나눠 먹은 치킨을 잊지 못한다.


민은 성적이 좋았다. 담임 선생님은 민이 서울의 어디 이름 있는 대학쯤은 거뜬히 붙을 거라 내심 기대를 하셨던 모양이다. 민이 가, 나, 다군을 다 비운 채 라군에 예술대학 하나만 달랑 지원해 버렸을 때, 불같이 화를 내셨으니.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 진짜? 떨어지면 어쩌려고? 안 떨어져. 민은 당당했고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예술대학의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나는 그곳에 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민을 동경했다. 민의 학교가 아닌, 그 당당함과 자신감을.


그녀는 지금 밴드에서 노래를 부른다. 패션디자인을 할 때도, 기타를 칠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민은 언제나 멋있다. 나는 가끔 민의 노래에 가사를 붙인다.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만나지만 내가 울면 민은 언제라도 달려와 주었다. 오래 만난 애인과 헤어지고 일주일을 굶고 있을 때, 술 마시더라도 안주랑 같이 마시자며 어묵 국물과 죽을 내 입에 넣어준 사람도 민 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백인경, 하고 부르더니 요즘엔 경아, 하고 부른다. 나는 아직도 성까지 붙인 풀네임으로 부르고 약속 시각에 늦으면 온 세상 짜증을 다 부린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데리고 술을 먹일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십 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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