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4 존버의 기술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3분 분량
봄이 시작될 무렵, 바질 씨앗을 심었다. 마치 볼펜으로 콕 찍어 놓은 점처럼 작은 이 씨앗 속에 정말 생명이 들어 있긴 한 걸까 의심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작고 연약한 떡잎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옳다구나 분갈이할 화분을 준비하고, 바질잎 레시피를 검색하고, 앞으로 바질은 사 먹는 일 없이 잔뜩 길러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생색내는 상상을 하며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들뜬 마음이 무색할 만큼, 바질은 떡잎에서 더는 자라지 않았다. 그것도 한 달이 넘도록. 미리 사다 놓은 큰 화분을 볼 때마다 머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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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도이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나는 물었다.
“만약에 네가 자식을 낳았는데 너랑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말릴 거야? 만화를 그린다든지, 연기를 한다든지.“
잠시 생각하던 도이는 ‘근데유.’ 하면서 뜻밖의 대답을 했다.
“연기를 하든 만화를 그리든, 하는 건 좋은데 내 자식이 60%의 재능뿐이라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진짜 애매한 재능 있잖아요. 노력해서 어찌어찌 데뷔까지는 할 수는 있어도 그 분야에서 성공하진 못할 게 내 눈에 보인다면? 인경 누나는 어떨 것 같아유?”
“글쎄, 현실 회피가 아니라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데까지는 지원해 주고 싶어. 자기가 스스로 그 60%의 재능을 깨닫고 아 안되겠구나,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는.“
포기라는 단어를 그렇게 내뱉자마자 찔끔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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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언제부터 글을 썼어요?’라고 물으면 조금 당황스럽다. 글을 쓴 건 일곱 살부터인데, 그렇게 말하면 20년 넘게 글쓰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 같아서 그냥 ‘고등학생 때부터요.’하고 얼버무린다. 어렸을 적 나는 쑥스러움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관심을 받고 싶지만 남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소심한 관종이었달까. 엄마는 일곱 살 딸에게 자신감과 표현력을 길러주기 위해 ‘국자감 웅변 글짓기 학원’에 보냈고, 나는 몇 년간의 웅변과 글쓰기로 자신감과 표현력 대신 목청과 음침함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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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작가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환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우리 집은 큰 책장이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사촌들로부터 물려받은 어린이 전래동화, 세계 동화 전집이 가득 꽂혀있었다. 컴퓨터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설치했고, 집에서 놀 일이라곤 독서뿐이었다. 돌리틀 선생 항해기나 시튼 동물기 등 꽤 두꺼운 장편 동화도 이즈음에 다 읽었다. 물론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무서운 게 딱 좋아 등 유수의 국내 명작들도 놓치지 않았다. 주말이면 학원에서 단체로 백일장 나들이를 갔다. 경치 좋은 곳에 돗자리 깔고 앉아 동시 한 편 써내면 온종일 뛰어놀 수 있었던 날로 기억한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에 들어서자 ‘이젠 공부할 시기’라며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원고지를 뺏는다 한들 무 자르듯이 흥미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공부는 하기 싫고, 그래서 계속 읽고 썼다. 글 쓰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존버에는 재능이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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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저 사람은 예술가가 천직이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성격이나 가치관 자체가 그냥 예술가로 태어난 것 같은 사람. 글을 따로 공부한 적 없지만 언제든 벼락처럼 찾아오는 영감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작가가 된 사람. 언젠가 작가가 될 사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약간 사차원이지만 방정맞지 않아 보였고 시크하면서도 사려 깊어 보였고 농담으로라도 빻은 소리를 비아냥거리는 빻은 소리를 입 밖으로 잘 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전혀 광대 같지 않았다. 나는 그게 꽤 예술가 같아 보여서 술자리에서 분위기 있는 척 조용히 뻐겨 본 적도 있었는데, 늘 30분도 가지 못해서 지지에게 놀림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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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우리 집 바질 이야기를 해줬다. 한 달 넘게 떡잎인 채로, 가능성인 채로만 존버 하고 있는 저 답답한 60%의 재능에 대해. 도이는 “더 튼튼하게 자라려고 땅속에서 준비 중인 거 아닐까유~” 했고, 그래서 나는 걔들이 스스로 지쳐서 시들어 버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기로 했다. 저걸 치울까, 어쩔까 탐탁지 않은 마음이었을 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바질이, 작은 믿음을 주자 일주일만에 좁쌀만 한 본잎을 틔우고, 날이 따뜻해지자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바질이 잔뜩 자라면 바질 페스토를 만들려고 했는데, 벌써 정이 들어 버려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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