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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4 상경 10주년

2013년 1월 24일,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눈보라 치던 휴게소의 풍경과 가난한 짐을 실은 1톤짜리 트럭, 내 무릎 위에서 잠들어있던 고양이를 기억한다. 순천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았지만 상경 날짜가 다 되어 가도록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고 발만 동동 굴렀었다. 그러다 OO문고의 문구 코너에서 만년필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희망 직종에 서점/출판/컨텐츠 라고 기재해두었는데 만년필 판촉이라니. 아무튼, 서점이니까. 책과 가까운 일자리겠거니 급한 마음에 덜컥 수락해 버렸고, 그쪽에서는 합격은 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형식상 면접이나 보자고 했다.

⠀아침 7시에 순천을 떠나 신림동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정오가 되어 있었다. 친절한 기사님이 방까지 짐을 옮겨 주셨다. 화곡동에 살던 막내 이모가 오셔서 먹을 게 없으니 장을 보자며 나를 근처 시장으로 데려갔고 케첩, 달걀 한 판, 식빵, 참치, 귤 한 봉지를 샀다.

⠀그래, 이제 뭐 할 거니? 이모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질문을 했고, 나는 면접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나와 면접을 볼 팀장이라는 사람이 역까지 나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고. 차로 태워 본사로 같이 가겠다고. 이모는 기겁을 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남의 차를 넙죽 타냐며. 겁도 없는 가스나, 미친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고 회사가 외진 곳에 있어서 혼자 찾아오기 힘들 거라고 마중 나오겠대. 나는 그때까지도 일손이 많이 달려 내가 급히 필요한 줄 알았다. 이모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절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인경아, 세상에 지가 손해 보고 불편한 거 감수하면서 남 챙겨주는 건 가족밖에 없어. 너, 서울에서 가족 말고는 절대 믿지 마. 때마침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고 슬쩍 액정을 넘겨 본 이모는 받지 말고 무시해! 하고 나를 윽박질렀지만 나는 어떻게 그래… 하면서 전화를 받아 죄송한데 면접을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하고 거듭 사과를 했다.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서울에서의 첫 약속부터 깨버린 무책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찝찝했다. 이모는 그런 내 표정을 대번에 알아채고 나를 남겨두고 돌아가면서까지 ‘절대 거기 가지 마!’하며 약속을 받아냈다. 짐 정리를 끝낸 후, 계속 남아있던 불편한 마음에 나는 OO문고를 검색했고, 거기 입점되어 있던 업체를 살펴보았다. 만년필을 판다는 그 업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또 한 번은 24시간 운영하던 신림 할리스에서였다. 당시 취직 준비생이자 시 습작생이자 작사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새벽까지 한숨을 푹푹 쉬며 2층 창가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일이 잦았다. 그때 아주 선하게 생긴 20대 후반의 여자가 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아, 저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요. 심리 공부하는 학생인데요... 나는 어땠냐면, 그 사람의 심리 테스트에 응하고 감탄하고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아 두어 번의 만남을 더 가진 것은 물론, 다음 만남부터는 저희 선생님과 같이 만나 보시는 건 어떠시겠어요. 라는 제안을 냉큼 받아 막내 이모에게 ‘비싼 상담을 무료로 받는다.’고 자랑했다가... 거의 강제로 마산에 쫓겨 보내질 뻔했다.

⠀10년 전 일기에서 나는 아득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라며, 이 모든 게 나중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안줏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글로 돈 버는 방법은 등단해서 상금 받는 것뿐이라던 내가 매달 저작권료를 받는 작사가이자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이자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개인 사업자가 되어 있다. 한 달에 적어도 120만원은 벌어야 학원비도 내고, 월세도 내고 고양이 사료도 살 텐데, 전전긍긍하며 훌쩍대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다 잘 될 거라고. 생각보다 더 잘 될 거라고. 여전히 몇 번의 뒤통수와 등짝 스매싱이 있겠지만,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고. 2033년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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