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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0 곽쌤 이야기

18.10.10 곽쌤 이야기



언니들은 첫 아기를 낳을 때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고 했다. 첫 시집을 준비하는 나는 요즘 곽쌤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곽재구 선생님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낯설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나는 드디어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다는 이른바 '대학생 뽕'에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교수님! 곽재구 교수님! 하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였다. 교수님, 뭐 드실래요? 그러자 곽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 인경아. 넌 내가 싫으니?

- 네?

- 왜 자꾸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거니?


나중에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승호 오빠가 웃으며 말했다. 곽쌤은 교수님이라고 하는 거 싫어하셔. 그건 그냥 직책이잖아. 나는 그때부터 언니 오빠들을 따라 냉큼 곽쌤! 하고 호칭을 갈아탔다. (곽쌤 앞에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끼리의 호칭으로 선생님의 동화 제목을 딴 '찌꾸쌤'도 있었다.)


S와 J, 그리고 나는 항상 09학번 '시 쓰는 애들'이었고 그만큼 항상 붙어 다니면서도 서로 치열했다. 하지만 그중에 내가 제일 못 쓰는 것 같다는 자격지심을 버릴 수 없었다. 오빠들은 항상 S와 J가 없는 자리에서 S가 제일 잘 쓰지! J가 제일 잘 쓰지! 하면서 나를 열받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S가 한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나는 새벽까지 뒤척이다 곽쌤께 메일을 보냈다. 그 당시 다른 교수님께 '인경이는 시 말고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떠니?'라는 이야기까지 들은지라 마음이 더욱 우울했다. 그리고 받은 곽쌤의 답장은 나를 너무 부끄럽게, 또 다잡게 하셨다.


'너와 S, J를 포함해서, 앞에는 앞으로 1000개쯤의 언덕이 자리하고 있어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그 언덕들을 차례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1번 언덕을 넘는데 뒤졌다고 한숨을 쉰다면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 새로운 시의 지평들과 만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돈키호테처럼 시의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거지.


누군가가 네게 시보다 소설을 쓰는 게 낫지 않겠니, 라고 말하는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맞아 난 시보다 소설을 쓸 운명이야, 라는 필이 온다면 그것은 바로 너의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 한 마디에 네 마음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면 그건 시 쓰는 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란다.

시는 모든 예술의 최정점에 있으며 정예의 순수함과 열정, 맑음을 꿈꾸지 못한 영혼은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지.'


곽쌤은 난생처음으로 시 때문에 나를 울게 하셨고 난 안되나 보다 하고 풀 죽어 있을 때 다시 시를 쓰게 하셨다. 쌤, 제가 오늘 술을 많이 마셨는데... 내일 1교시 쌤 수업인데, 제가 지금 시 쓰려고 지금 술을 마시는데요... 어이없는 술 주정에도 그래, 그래. 그러면 내일 나오지 말어라. 하시며 토닥여주는 분이셨다. 그러면서도 칭찬엔 꽤 인색하셔서 나는 4년간 나만 곽쌤을 좋아한 거라고 투덜거렸다. 후배들은 내가 졸업하고 나서야 아이 참, 곽쌤이 우리 수업시간에 언니 얘길 얼마나 하는데요! 하고 알려주었다.


P와 함께 옥상에서 야외취침을 했던 학기에 A+를 받았던 과목도 곽쌤 수업이었고 밤늦게까지 낙우송에서 술을 마시던 우리에게 딸기를 사다 주며 내일 아침 수업에 늦어도 된다고 하신 분도 곽쌤이셨다. 차를 몰고 가다가도 예쁜 꽃길을 보면 언제나 내려서 꽃에게, 나무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분처럼 길가의 고양이에게 소리 내어 말을 거는 버릇도 그렇게 생겼다. 어제는 하루 종일 곽쌤 시집과 산문집을 읽으며 잔뜩 그리워했다. 내 시집이 태어나면, 순천에 내려가야지. 긴 편지와 함께 곽쌤을 뵈러 가야지. 가서 조금은 울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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