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7 바보들의 고백법
(글로소득 6월호에서 발췌)
(중략)
P는 아마 나의 우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본 친구일 것이다. P 앞에서 나는 늘 둑이 터지듯 울 수 있었다. P는 내가 스스로 울음을 그칠 때까지 꼭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나는 P를 위로하는 데에 늘 서툴렀다.
대학교 3학년 때, P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기숙사 자치회 부회장이었고 그날은 기숙사 축젯날이었다. P는 축제 행사를 돕다가 소식을 듣고 급하게 대전으로 내려갔다. P를 보내면서도 내가 같이 가야 하는데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 굴렀다. 기숙사 행사는 이틀간 이어졌고 발인하는 날 새벽에서야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P가 장례식장을 알려주지 않고 내려가는 바람에 걔네 집 근처 모든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알아냈다. 조심스럽게 장례식장 문을 열고 신발을 벗었을 때, P가 휘둥그레진 얼굴로 달려왔다. 달려와서 와락 나를 껴안고 울며 말했다.
-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P가 울었기에 나도 울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온종일 걔 손을 잡고 곁에 있었다. 나중에 우리는 P의 대사를 곱씹으며 웃었다.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니, 이건 쫓아내기 직전에 하는 대사 아니냐. P는 장례식장에서 나를 껴안던 순간 말고는 울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평소처럼 잘 웃었고 밥도 잘 먹었다. P는 역시 어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느 늦은 밤, P가 레몬소주 두 병을 사 들고 귀가했다. 걔가 먼저 술을 사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반색을 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하고 재차 물었지만, P는 ‘아니야, 그냥 마시고 싶어서~’ 하고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P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뭐야, 안 알려주면 나 안 마셔!’ 하고 종이컵을 내려놓자 P는 ‘그냥 좀 같이 마시자, 이년아!’ 하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계속 입을 내밀고 떼를 썼다. 한 병을 거의 혼자서 비운 P는 조용히 말했다.
- 오늘 우리 할머니 사십구재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읽고 P가 대번에 파하 웃으며 ‘그러게 그냥 좀 마시자니까!’ 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P의 옆으로 가서 걔가 나에게 늘 그랬듯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술 더 마시고 싶으면 내가 사줄게…’ 였다.
나는 늘 궁금했다. 이토록 서툴기 짝이 없는 내 곁에 P가 언제까지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나는 걔한테 해준 게 없는데, 내가 그녀에게서 이렇게 무한한 안정을 받아도 되는 건지. 작년 겨울, P의 생일이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대전에 내려갔다. 대낮부터 추어탕에 막걸리를 마셨고, 산길을 걸으며 수다를 떨다가 걔가 좋아하는 카페에도 갔다. 저녁에 육회를 먹다가 나는 슬그머니 물었다.
- 넌 나한테 안 섭섭했어?
- 뭐가?
- 그냥… 너는 내 일이라면 진짜 언니처럼 항상 도와주잖아. 나 처음으로 북토크 할 때도 당일에 막무가내로 ppt 넘기는 거 부탁했는데 다 해주고, 8월에 전시회 했을 때도 와서 공연 셋업 도와주고… 내 생일 때도 항상 시간 맞춰 와주고. 막상 너 막차 타고 집에 갈 땐 내가 손님 맞느라 정신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 그게 뭐가 섭섭해? 제대로 인사 못 한 거?
- 전부 다. 넌 항상 나한테 너무 많이 해주는 것 같아서. 난 너한테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 뭘 해준 게 없어. 결혼식 때 축가 불러줬잖아. 오빠 친척들이 전부 네 얘기만 하더라. 망사스타킹 신고 사미인곡 부른 친구 짱이었다고.
- …맞아. 좀 짱이긴 했어.
- 난 그냥… 미안했어.
P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미안하다니, 대체 뭐가?
- 예전에 같이 학교 다닐 땐 네 시를 읽고 너를 읽어낼 수 있었거든. 아, 인경이가 무슨 생각을 했구나. 어떤 심정으로 썼구나. 그런 거. 내가 시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너를 사랑하니까 읽고 말할 수 있었거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P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 근데 나 언제부턴가 시를 못 읽겠는 거야. 글을 못 읽겠는 거야… 내가 이제 너무… 문학이랑 멀어진 거야.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돼버렸어. 그래서 전시장에서 네 시를 읽는데 너무 희미한 거야. 뭔가 말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에 대해 말하는 법을 까먹어 버려서… 그래서 너한테 아무 말도 못 해주고 와서…
그래서 미안하다고. 웃으며 고백하는 P의 앞에 젖은 냅킨이 꾹꾹 구겨진 채 쌓여가고 있었다. 육회 한 접시에 청하를 두 병 반쯤 비웠을 때였다. 칸막이로 좌석이 분리된 술집이었다. 우리는 훌쩍거리면서, 그러나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고백하며 울었다. 칸막이 밖에선 코감기 걸린 여자애 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시 같은 거 몰라도 된다고. 문학 같은 거 다 잊어도 된다고. 난 네가 문예창작과 동기인 P여서가 아니라 그냥 너라서 좋은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뭐가 미안하냐, 진짜 웃겨… 네가 못 읽는 게 아니라 내가 못 써서 그런 거야, 바보야…
우리는 계속 바보라서, 서로를 바보라고 부르면서도 제가 더 우스워지는 걸 택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고, 바보 같은 표정으로 바지 뒷주머니를 더듬던 겨울밤이었다.
P는 내가 아는 이들 중 유일하게 프리를 겁내지 않는 사람이다. 프리가 정말 손바닥만 했던 시절, 같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가끔 P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프리는 인상을 쓴다. (정말이다.) 우습게도 P가 프리를 짓궂게 놀릴 때마다 나는 그 애의 유일함에 안도한다. 우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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