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0 냉정과 다정 사이
- 나 지금 가방 삐뚤어졌나 좀 봐줘.
오랜만에 멘 백팩은 아무리 어깨끈을 조절해도 자꾸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내 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J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 가방이 아니라 누나 어깨가 삐뚤어졌는데?
- 내 어깨가?
- 응. 왼쪽어깨가 오른쪽보다 높네, 이렇게.
J가 이게 바른 자세라며 내 어깨를 바로잡아 주었지만 내게는 영 불편하기만 했다.
언젠가 T와 술을 마시다가 그런 얘기를 했다. 만약에 우리가 집도 절도 없는 외톨이였다면 인생을 막 살았을까? 어쩌면 좀 더 예술적인 삶을 살았을 지도 몰라. 시답잖게 낄낄거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T와 나 사이에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T가 웃긴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씨발 개웃겨! 하면서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순식간에 정색했다. 야, 내가 그래두 작가고, 시인이고, 앞으로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는데 씨발씨발거리면 되겠니? T는 뭐 어때, 씨발! 하면서도 여기요! 여기 백작가가 씨발씨발 합니다! 하면서 나를 놀렸다. 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이런 것들이었다. 얘도 마냥 맑은 애는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 우리는 서로를 고백하며 더욱 돈독해졌다.
예술가라면 어느 정도 염세주의나 냉소주의적 자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물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한, 이를테면 ‘삐딱하게 바라보기’의 일환처럼. 아무래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미움 받는 일이 제일 무서워서였는지도 모른다. 학부 시절, 합평 때마다 선배들에게 들었던 충고 중 하나가 ‘더 못되게 써라.’ 였다. 나는 입을 댓발 내밀곤 시인이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남을 위로하는 것보다 나를 위로하는 게 먼저라는 걸 깨달은 건 더 후의 일이다.
결국 삐뚜룸하게 가방을 메고 우리는 생고기 김치찌개에 낮술을 기울였다. T와 J와 나, 이렇게 셋이 모이면 항상 서로의 의견을 스쿼시 볼처럼 맞받아친다. 맞아 맞아,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건 나도 인경누나 말에 동의해. 그래 나만 쓰레기지. 결국 셋이서 술잔을 부딪칠 때야 한 라운드가 끝난다. 사실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아무리 나빠져 봐야 고작 아스팔트에 침뱉기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잦은 우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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