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03 맥시멀리스트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나는 '버리는' 행위 앞에서 늘 망설인다. 얼른 변명해보자면 쓰레기를 집안에 모아둔다는 건 아니고, 뭐든 이왕 버릴 거라면 끝까지 알차게 사용한 후 버리거나, 버리기 보다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는 거다. 입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옷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을 때, 민이 우리 집에 와서 옷장을 정리해준 적이 있었다. 옷장 정리 좀 해야겠어. 하고 도움을 청해놓고 막상 가지고 있던 옷을 절반 가까이 버리게 되자 나는 웅얼웅얼 옷 한 장 한 장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잠옷으로 쓸 수 있는데… 너 지금 그렇게 말한 잠옷이 몇 벌인 줄 알아? 매일 갈아입어도 일곱 벌이면 충분하지? 이거 언제 다 입을래? 근데 그건 한 번도 안 입은 건데… 그럼 앞으로도 안 입어. 민은 아주 명료하게 버릴 것, 입을 것을 구분하며 빠르게 옷장을 정리했고 내내 울상을 짓고 있던 나는 정리가 끝난 후 두 배는 넓어진 옷장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는 생각 없이 아무거나 안집을 거야. 잘 버리는 것도 기술이야. 피부로 체감한 날이었다. 그래 놓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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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서 이유 없이 산 물건처럼 정신을 차려보니 문득, 까닭 모를 감정들이 손에 들려있을 때가 많았다. 어디서부터 기분이 상한 거지? 나는 지금 무얼 의심하지? 어제의 나는 왜 그랬지? 내가 이 사람을 왜 이렇게 생각하지? 나는 그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지? 같은. 산만하고 산발적인 감정들. 시작점을 찾기가 어렵거나 두려워서 황급히 검은 비닐 속에 욱여넣은 감정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생각들이 스스로를 괴롭힐 땐 동그란 버튼을 상상하고 그걸 꺼버려. 친구들에게 그렇게 떠들어놓고 정작 내게는 조절 못 할 감정과 관계들이 너무 잦았다. 아무래도 나는 거대한 냉동고 같은 건 될 수 없는 사람인가 봐. 내 속에서는 열병이 흔했고 계절이 자주 바뀌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주렁주렁 매달린 비닐들이 소란스럽게 잠을 깨워댔다. 한번쯤 정리할 때가 됐지. B가 내 잔에 콜라를 따라주며 중얼거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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