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30 서울이모 이야기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막내이모에게는 '막내이모'보다 '서울이모'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이모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투박하고 쨍쨍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서 들려오는 이모의 매끈한 서울말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서울이모는 내가 아기였을 때, 철마다 예쁜 옷을 사서 보냈다고 했다. 한글은 커녕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기에게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쓰는 이모였다.
우리 가족들이 서울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어릴 적 서울이모는 몇 년에 한 번씩 겨우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길도 험한데 서울 애기가 왔다고, 사촌동생은 명절 용돈을 우리보다 두 배 씩은 더 받았다. 그러다 사촌언니가 졸업을 하면서부터, 사촌오빠가 취직을 준비하면서부터 나, 동생들까지 우리는 서울이모를 필두로 슬금슬금 상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모이면 꽤나 북적거린다.
서울에 올라온 첫 날, 아무것도 모르고 다단계 회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뻔한 적이 있다. 이모가 짐정리 끝나고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설명을 들은 이모는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세상에 지원자가 면접 보러 가는데 지하철 역까지 차로 데리러 오겠다는 회사가 어디 있냐고. 이거 바보 둔치 아니냐고. 경아, 세상에 아무것도 안 바라고 내가 손해보면서까지 날 위해주는 건 가족밖에 없는거야. 이노무 기집애 정말 코 떼어가도 모르겠네. 너 서울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 날 이모는 카랑카랑 나를 야단쳤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이모는 내게 그런다. 야, 인경이 너 멋있게 산다야.
서울이모랑 술을 마실 땐 90% 확률로 취해버리고 만다. 이모네랑 우리 집은 지하철역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모는 종종 주말 오후에 전화를 걸어 갈비찜을 했으니 와서 술 한잔하자, 김치전을 부쳤으니 막걸리나 먹자면서 나를 부른다. 이모랑 술을 마시다 보면 나의 어릴 적 모습이나 이모의 스무 살 적, 엄마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술안주로 자주 등장한다. 등굣길이 십 리 길인 시골에선 자전거가 필수였는데 엄마는 남매 중 유일하게 자전거 타는 걸 무서워해서 학교 근처에서 하숙했다는 얘기도 이모에게서 들었다. 아, 내가 그래서 자전거를 못타는구나! 하고 냉큼 내가 주워들면 못 되면 조상 탓이지! 야, 그래두 늬 엄마는 졸업하기 전엔 자전거 배워서 통학했어! 하구 받아친다.
어릴 적 말도 빨리 트고 조잘조잘 질문도 징그럽게 많았던 내게 이모가 얘는 완전 여시네~ 그러면 내가 홱 대답했단다. 이모! 내는 그냥 여시가 아니라 백여시다! 이 얘긴 한 오백 번은 들은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웃기다. 이모랑 사촌 언니랑 나랑 셋이서 동네 횟집에서 소주 열 다섯 병을 깐 사건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이모 삼촌 오 남매는 모두 아들딸 하나씩은 두었는데 서울이모만 아들 하나다. 명절에 모이면 요즘엔 얼큰하게 술 한 잔씩을 하고 다들 딸 자랑을 한다. 딸이랑 고민 상담 한 이야기, 딸이 건조기 사준 이야기, 딸이 해준 웃긴 이야기... (우리 엄마가 엄청 신나는 시간이다.) 결론은 역시 딸 하나는 있어야 안 외롭다는 거다. 서울이모는 웃으며 듣다가 아유 잘났어들! 딸 있어서 좋겠수! 하고 만다. 나는 슬그머니 이모 팔짱을 끼고 이모도 여기 딸 있잖아 서울딸! 그러면 이모는 역시 우리 경이가 최고라며 엉덩이를 두들기고 엄마는 저 백여시 봐라! 웃으며 나를 홀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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