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4 저염식 슬픔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1분 분량
고등학생 때였는데 아빠가 하시던 사업이 망했거든요. 그때 이후로 집도 되게 어려워지고 많이 힘들었는데... 전 그때 '아 나도 드디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되게 철없었죠?
지난주 주말에 들었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사연 있는 아이'가 되기 위해 손톱만 한 생채기에도 덧나라, 더 아파라 하며 물을 뿌리던 기억. 운동화 끈을 풀어헤치고 달리던 기억들. 부모님이 싸우고, 친구들한테 따돌림당하고, 남자랑 잤다가 차이고 하는 그런 보잘것없는 거 말고 좀 더 그럴듯한 상처를 갖고 싶었다. 시를 배우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술을 마시는 게 너무 즐거워서 짜증이 났고 대체 어떻게 하면 슬퍼질까, 애를 썼다.
아픔이나 절망은 말하자면 소금 같은 것이어서 내가 쓴 이야기는 밍밍하니 누구에게나 있을 법 했다. 친구들에게 듣는 짜게 절여진 이야기들은 술이랑도 잘 어울렸다. 거하게 술에 취해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훌쩍거렸고 우리들 사이에서 가난이나 부모님의 이혼 같은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대체 나는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결국 선생님께 푸념을 했다.
넌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슬펐던 적이 없니? 너의 슬픔을 네가 보듬어주지 않고 달아난다면 그 슬픔들이 너무 가엾어지지 않니?
선생님은 딱 그렇게만 말씀하셨지만, 너는 겁쟁이야. 너는 슬픔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런 말들이 왕왕 귀에서 맴돌았다. 왜 불행과 슬픔이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녀석. 내가 가진 슬픔들은 너무 찌질하고 민망한 날 것들이었기에 소주 두 병을 마시면서 새벽 내내 엉엉 울면서 시를 썼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복도로 나와 또 울었다. 사소한 슬픔에 처음으로 지어준 이름은 촌스럽고 감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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