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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8 연희동

서울편지 01. 연희동


2013년 1월 24일에 서울에 올라왔으니 그 날은 1월 28일쯤이었을 거다. 짐을 푼 후 곧장 찾아간 곳은 연희동이었다. 연희문학창작촌. 거기 가면 작가 한 명쯤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면서. 혹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걸어 도착한 곳.


동네는 한산했다. 연희문학창작촌에 들어서자 작가들의 손바닥이 벽에 찍혀 있었다. 익숙한 이름과 낯선 손바닥 사이에서 한참동안 묘하게 울렁거렸다. 창작촌 안을 허위허위 돌아다녔지만 기대했던 (우연을 가장한) 작가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위를 피해 지하에 있는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수첩을 펼쳐놓고 서울에서의 삶을 기대하며 계획을 끄적였다. 아니, 끄적이려고 했다.


1월 29일,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뭘 할까. 2월에는 뭘 할까. 주말엔 연희문학창작촌에 오고, 매일 집 근처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아, 그러려면 노트북도 가벼운 걸로 하나 새로 살까. 신림 근처의 도서관을 알아보고, 시 쓰기 수업을 등록하고, 가끔 분위기 좋은 바에서 술도 한 잔 하고. 서울 와서 그런 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으니까. 내일부터 할 일들을 신나게 적다가 멈칫했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서울에 올라올 때 내 수중엔 300만원이 있었다. 필요한 세간살이와 음식들,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나니 순식간에 100 얼마가 사라졌다. 돈을 벌어야겠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막막해지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려면 취직을 해야 할거고, 그렇게 일을 하다보면 결국 그 삶에 익숙해질테고, 그러다 시인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느새 써내려갔던 계획 옆에는 여러번 덧쓴 통장 잔고가 더 까맣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울해진 나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갓 딴 탄산음료 같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가 기포가 다 빠진 기분으로 돌아왔다. 취직을 해야한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한다. 습작생에서 취준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세 달 정도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나는 취업을 했다. 수습기간에 받았던 첫 월급이 140 얼마였다. 그걸로 월세도 내고 고양이 사료랑 모래도 사고 작사학원도 다니고 시 수업도 들었다. 점심은 포도 한 송이나 바나나 두어개로 때웠다. 다이어트도 할 겸, 돈도 아낄 겸. T는 내 도시락을 보더니 조금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 신선이에요?


그 겨울, 연희동의 지하 도서관에서 나는 이미 3년은 미리 살아버린 것처럼 걱정을 했다. 주말마다 연희문학창작촌에 가야지, 했던 다짐과 달리 딱 한 번 더 갔다. 주말엔 문을 닫는다는 것도 몰랐다. 그마저도 오래 사귀었던, 지금은 헤어진 애인과 갔었던 터라 그 애가 생각 날까봐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피터팬 제과점이 있다. 거기에는 '아기궁둥이' 라는 이름의 크림빵을 파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닌 첫 회사 사내 카페에서 그 빵을 팔았었다. 지금 다시 연희동에 가면 추억에 잔뜩 젖어서 돌아올 것 같다.


글을 못 쓰게 될까봐 미리 전전긍긍 했던 것과는 달리 시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시집도 냈지만 여전히 내가 카페에 들고 오는 노트북은 서울에 처음 올라올 적부터 쓰던 무거운 고물이다. 걱정은 카드 돌려 막듯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지만 불안은 안개처럼 느닷없이 쏟아지던 스물 넷,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게 제일 겁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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