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0 명동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서울편지 02. 명동
-주임님 운동가세요?
-네. 데이트가세요?
-네, 명동 가요.
-여기서 명동 가는 버스가 있어요?
-바로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게 있긴 해요. 내려서 좀 걸어야 하지만.
-그러고 보니 명동 간지도 엄청 오래 됐네요. 서울 오면 자주 갈 줄 알았는데.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요 뭘. 명동은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고.
퇴근길. 신호등에서 만난 직장 동료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저녁, 회사에서 명동까지 가는 길을 지도로 검색해보았다. 환승 없이 가면 한 시간, 이것 저것 갈아타고 가면 40분. 내가 사랑하던 명동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고3때는 서울에 올라오는 일이 잦았다. 백일장부터 수시 실기, 정시 실기까지. 다양한 핑계를 대며 이모집과 사촌언니 집을 전전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제나 안부처럼 들렀던 곳이 바로 명동이었다. 그 시절 명동은 마산의 창동이나 순천의 연향동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고 활기가 넘쳤다. 나는 그 속에서 영락없는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가방끈을 꼭 잡아매고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걸으면 온갖 나라 말들로 말을 붙여왔다. 이방인이지만 묘한 동질감이 흐르는 동네. 언젠가 서울에서 살게 되면 매일 와야지. 하늘하늘한 꿀타래나 길다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낼름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울에 온 지금, 명동에 간 적을 가만히 꼽아보니 다섯 손가락 안이다. 왜 안 갔지? 나조차 문득 궁금해졌다. 바빠서? 생각보다 집에서 멀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많은 물음표 중에서 나를 납득시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서울에 온 지 몇 달 후 민과 망원동의 막걸리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강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 한강 처음 와 봐, 민아!
내가 세상 신난 표정으로 풀쩍풀쩍 뛰어가자 민은 깜짝 놀라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강엔 치맥이지.
-치킨 사러 가?
-아니 시켰어.
-우리인 줄 어떻게 알아? 배달 와?
-알아.
신비롭게 배달된 치킨을 뜯으며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줄줄 외웠다. 63빌딩, 이태원, 압구정, 롯데월드, 동대문, 남산 케이블카, 대학로, 노량진… 민은 아, 거기 재밌지. 야 거긴 별로 볼 거 없어. 하는 식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날 내가 읊었던 장소 중 명동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쉬움에 대해서는 허둥지둥댄다. 그것은 오랜 나의 인생 신념이기도 하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그럼 세상엔 아쉬울 게 너무도 많아졌다. 나름 부지런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몇몇 중요한 것들은 우연히, 혹은 일부러 놓치기 쉬웠다. 피곤을 이유로 사양한 부름이나, 사려다가 내려놓은 책, 하려다가 못 한 연락. 그 중 어떤 것들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까먹은 초콜릿처럼 계절이 한 바퀴 지난 후에야 오래 세면대 물을 틀어놓게 했다.
명동 골목길에는 내가 사주를 봤던 낡은 이층 카페가 있고 애인과 싸우고 엉엉 울던 스물 다섯이 있다. 니혼진 데스까? 하고 말을 붙이던 꿀타래 청년들과 무거운 배낭을 대신 들어주며 칵테일을 사주던 친구가, 내가 오천원을 밀어넣고 올해는 등단하게 해주세요, 빌었던 자선 냄비가 있다. 해놓고 지키지 못한 약속들은 거기서 외국어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마주치면 우리는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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