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6 낯 가리고 아웅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낯[낟][명사]: 눈, 코, 입 따위가 있는 얼굴의 바닥.
나는 정말 정직하게 '낯'을 가리는 사람이다.
갤러리 스탠에서 열린 낭독회 때는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나는 계단 아래 구석에 숨어 낭송할 시만 중얼대고 있었다. (아마도 보다 못한) 지지가 내게 와서 '인경, 소셜소셜 하실?'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사시켜주어도 잔뜩 굳어 몇 마디 하지도 못한 채 다시 계단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뒤풀이 장소로 이동해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는 길게 테이블을 잡고 삼겹살을 구웠고 나는 거의 내 앞에 보이는 멤버들과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요, 한 다섯, 여섯명까지의 모임에서는 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사람이 그보다 더 많아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간헐적으로 모집되는 시소 모임이 늘 7명 미만으로 진행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소수의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눈을 자주 마주칠 수 있으니까. 하도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 보니 '원래 그렇게 사람을... 직관적으로 쳐다보세요?' 하는 얘기를 듣고 머쓱하게 웃은 적도 있다.
올해 내 생일파티 땐 파티룸을 대여했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였다. 나를 포함해서 딱 일곱 명, 그야말로 소수정예 파티였다. 나야 그 애들을 다 알지만, 그들끼리는 사진이나 이야기로만 서로를 알고 있었다. 어색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는 밤새도록 실컷 술 마시고 게임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파티가 끝난 이튿날에야 T에게 '나 사실 진짜 걱정했잖아!'하고 털어놓자 T는 웃으며 그래보이더라고 했다.
누나 되게 얼었잖아요. 완전 애쓰는 게 다 보이던데.
무슨 소리야, 나 엄청 잘 놀았는데.
그게 아니라 1초라도 분위기 어색해질까봐 전전긍긍하더라고.
...티났니?
누나는 표정 진짜 못 숨겨.
파티가 성공적이었던 건 내 친구들이 나만큼 애써주었기 때문이었다. P는 파티가 끝난 후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사람들이라는 나의 가치관이 맞았어.'라는 메시지를 보내 나를 오래 히죽거리게 했다. 내가 유일하게 낯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내 친구의 친한 친구'였다.
나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믿는다. 애인과 헤어지면 가장 먼저 앨범을 지우고 SNS를 끊어야 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빠르게 마음이 정리되었다. 하지만 파티에 왔던 친구들과는 늘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헤어진다. 1주일 만에 다시 보는 친구도 있고 2달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는 친구도 있다. 2년 만에 만난다고 해도 즐거울 것이다. 서로의 낯을 자신처럼 아끼는 우리는.
(+)
다만 나는 눈을 감고 손끝으로 애인 얼굴의 윤곽을 더듬으며 그를 기억하는 버릇이 있었다. 왜 그래? 혹시 나중에 내 눈이 안 보이게 되어도 안 까먹으려구. 그 버릇이 나중에 나를 끈질기게 울리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그랬다. 촉감이라는 감각이 이토록 힘이 센 줄 미처 몰랐다. 내 손끝이 닿았던 애인들은 무엇을 기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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