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4 희망 요절 사항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첫 번째 시소 모임 때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낭송했다. 그리고 서른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W가 내뱉은 말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더이상 죽음 뒤에 '요절'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나이가 아닐까.
요절. 이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위엔 요절을 꿈꾸는 애들 천지였다. 예술의 완성은 요절! 을 외치면서. 전공 과제에 '유서 쓰기'가 있었을 정도이니 요절이라는 화두는 교수님들도 인정할 만큼 우리와 꽤 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서른 살 전에 죽는 게 목표야.' 하고 한 어린 애인이 털어놓았을 때, 나는 밥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화를 냈다. 그럼 뭐하러 연애를 해. 나는 죽는 게 무서웠고 최대한 안 죽고 싶었다. 요절에 대해 꽤 실감 나게 언급하던 이들 앞에선 진짜 죽지도 않을 거면서 허세 좀 그만 부려라. 하고 말하려다가 혹시 나 때문에 오기로 죽어버릴까 봐 입을 다물곤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어느덧 서른이 된, 혹은 그 주위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요절이라는 단어 대신 죽음이라는 단어를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예전만큼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화두가 코앞에 직면해있는 죽음이 아닌 '좀 더 잘 죽기 위한' 방법적 논의로 옮겨간 것이다. 연금보험이나 퇴직금, 자택근무, 노후계획 같은 것들.
내 유서에는 죽은 나를 어떻게 해달라는 메세지가 적혀있다. 애인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만 은밀하게 부탁해둔 것이었다. 친구들은 '그거 불법이잖아.' 라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주었다. 가끔 마음이 외로울 때면 어제 죽은 내 장례식장을 상상해본다. 거기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막 눈물이 나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와 글쓰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유서 쓰기'가 나왔을 때, 오래전 썼던 유서를 읊으며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 너는 만약에 신이 나타나서 한 달 뒤에 죽는다고 알려주면 어떻게 살고 싶어?
T: 일단 대출을 왕창 받아서 돈을 잔뜩 마련할 거야.
나: 그리고?
T: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볼 거야. 돈 없어서 못 해본 거 전부다.
나: 그럼 넌 네가 한 달 뒤에 죽는다는 거, 주변 사람들한테 말할 거야?
T: 아니. 말 안 해.
나: 너가 갑자기 펑펑 돈 쓰고 다니면 의심부터 해야겠다.
T: 근데 누나한테 부탁할 건 있어.
나: 뭔데?
T: 내 장례식장에서 T의 내력 같은 거, 어떻게 살아왔고 그런 거. 그거 누나가 낭독해줬으면 좋겠다.
나: 미친놈아.
도합 59세의 두 사람은 고깃집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당분간 유서 쓰기나 유언을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꼭 울게 될 걸 알면서도, 잊을만 하면 만약에- 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죽지 않아야겠다는 확신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P와 장례식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둘 다 울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 때는 안 울었지만, 그 대화를 생각할 때면 항상 기분이 아주 묘해지고 코 끝이 찡해진다.
나: 우리 중에 누구 한 명이 먼저 죽으면 어떨까? 막 울까? 실신할까?
P: 실신할 시간이 어딨어. 육개장 나르고 인사하고 얼마나 바쁠 텐데.
나: 맞아, 맞아. 소매 걷고 일단 일부터 하겠지. 우리 둘 다 그런 건 잘하잖아. 또.
P: 그러다가 새벽에 조문객들 다 빠지고 전부 잘 때 영정 앞에 소주 들고 앉아서.
나: 쌍욕 하면서 그치.
P: 응, 이 년은 죽어서도 나를 고생시키네 아주. 이러면서.
나: 그러면서 울겠지?
P: 응.
나: ......
P: 그러니까 우리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죽자.
나: 응. 경로당 앞에서 해바라기 하면서 양갱이 까먹으면서 옛날얘기하고 그러자.
우리는 서로 약속한 게 있어 오래오래 살아야 했다. 다만 우리가 양갱을 까먹을 곳이 대전 경로당이냐, 마산 경로당이냐, 서울 경로당이냐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건 좀 더 살아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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