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22 조금씩 자주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그러고 보니 내가 가스레인지를 언제 마지막으로 썼더라? 설거지 도중 문득 궁금해져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력 하나는 꽤 좋다고 자부했는데 도통 빠르게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새삼스러운 사실이 둥실 떠올랐다. 나 정말 집에서 요리 안 해 먹는구나.
요리하는 걸 그다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중학생 땐 요리부 부장을 맡기도 했고 고등학생 땐 베이킹에 미쳐서 손수 구운 쿠키와 빵을 부지런히 학교로 날랐다.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불을 쓸 일이 없어 거의 요리를 놓고 살았지만 맛있어 보이는 레시피가 보이면 꼭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좀 달라졌다. 이제 반찬을 직접 만들어야 하나, 걱정할 새도 없이 집에서는 꾸준히 김치나 멸치볶음, 아귀포 같은 반찬을 보내주었다. 게다가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오래 주방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요리할 일이 별로 없었다는 거다. 나는 술안주를 재촉했고 그들은 나에게 술 대신 밥을 먹이고 싶어 했다.
배부르면 남겨라. 억지로 먹지 말고.
어릴 적부터 엄마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입이 짧은 나는 식당에서 나오는 작은 공깃밥 하나를 다 먹으면 배가 터질 것처럼 가득 찬다. 명절 때 모인 식구들의 밥을 퍼주며 엄마는 항상 맨 마지막에 내 밥그릇을 따로 챙겨주었다. 새 모이만큼 담긴 밥그릇을 보며 이모들이 인경이 밥 좀 더 줘라. 하면 엄마는 아이다 언니야, 쟤는 저거면 된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가 좀 불편했다. 사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적을 뿐이지 하루 섭취량을 따졌을 땐 딱히 적게 먹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조금씩 자주 먹는' 타입이기에 밥을 많이 못 먹는 건 그렇다 쳐도, 몇 시간만 지나면 출출해지는 게 문제였다. 밥도 남긴 주제에 염치없이 배고프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 곤욕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늘 밥을 푹푹 잘 먹는 사람을 좋아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 해 오랑해, 육랑해, 하면서 장난만 치다가, 밥 잘 먹는 게 너무 보기 좋아서 빤히 쳐다보다 벌컥 사랑해, 하고 말한 적도 있었다. 테이블 위에 공깃밥이 놓이고 식사가 시작되기 전 내가 먼저 크게 한 수저 떠서 애인의 밥그릇에 덜어줄 때의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만큼만 먹어도 돼. 나는 이게 좋아. 두 그릇의 밥이 서로에게 딱 맞는 양만큼 배분될 때의 유대감. 둘 다 적당히 배부르고 맛있게 식사를 끝낼 때의 만족감. 하지만 애인은 내 식사량을 알면서도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일 땐 제가 먹는 만큼 내 밥그릇을 채워주었다. 당연히 나는 반도 못 먹고 배불러, 소리를 내뱉었고 애인은 조금만 더 먹지. 하면서 아쉬워했다. 그러다 겨우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우리 과자 먹을까? 하고 냉큼 목을 끌어안는 내 모습이 얄밉다고 웃었다. 밥, 맛없었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가끔 나를 추궁했고 나는 진짜 맛있었는데 배가 불러서... 하고 웅얼웅얼 대답했다.
생각난 김에 주방 정리를 싹 끝냈더니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식기는 앞접시였다. 정확히는 앞접시라기보다 소스 그릇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식기들이다. 5중 코팅 프라이팬, 주물 냄비, 이런 실용적인 것들엔 인색하면서 예쁜 앞접시만 보면 어김없이 지갑을 열었다. 손님이 많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때 쓰면 좋겠다. 앞접시가 한꺼번에 다 나오는 일은 주방 청소 때뿐이었지만.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부를 수 있었다. 집 앞 마트에 들른 친구들이 뭐 사갈 거 없어? 하면 항상 '치즈랑 크래커랑 사과.' 하고 말했다. 꿀과 부순 견과류를 뿌린 사과 카나페는 내가 친구들을 초대할 때마다 선보이는 메뉴였다. 누군가는 '맛있는데 좀 달다.'고 말했고 나는 '그럼 남겨도 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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