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31 사람 인 서울 경
- 백인경
- 2025년 7월 26일
- 2분 분량
백인경. 성에는 흰 백(白)자를 쓴다는 걸 알았지만 이름의 뜻은 사람 인(人)자에 서울 경(京)자겠거니, 멋대로 해석하던 때가 있었다. 잘 끼워 맞추면 그럴듯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사람이 되라는 뜻인가. 사실 그땐 아는 한자도 별로 없었다. 나는 왜 인경일까. 성이 백씨니까 더 예쁜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주변에 민경이나 인정이는 많았어도 인경이는 없었다. 이름에 대해 별생각이 없다가, 갑작스레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주민등록증이 나올 무렵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해 동사무소로 가기 전, 엄마, 내 이름 한자가 뭐지? 하고 물었더니 어질 인(仁)자에 볕 경(景)을 쓴다고 말해주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이 좋은 뜻을 두고 서울 사람으로 등록될 뻔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제일 싫어한 것은 성까지 붙여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건 정 없어 보인다고 나는 짜증을 냈다. 인경아, 하고 부르라니까! 하지만 진짜 친한 친구들은 늘 백인경! 하고 나를 불렀다. 조금 친한 친구들은 백! 하고 불렀고 인경아... 하고 겸연쩍게 부르는 부류는 나와 별로 안 친한 아이들이었다.
친구가 많은 아이들은 대개 이름보다 더 친숙한 별명이 있었다. 나는 그게 늘 부러웠다. 내게는 딱히 이름을 대신할 별명이 없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후이 걔, 5반 선도부, 거만하게 고개 들고 다니는 애, 누구 친구. 이런 식으로 불렸다. 후이는 내가 속한 동아리 이름이었고, 선도부 시절엔 복장 불량인 후배들을 기막히게 잡아내는 걸로 유명했다. 거만하게 고개 들고 다니는 애, 는 늘 콧등에 어중간하게 내려오는 안경이 성가셔 아예 턱을 들고 눈을 슬쩍 내리깔고 다니는 버릇 때문에 붙은 대명사였다.
주간 백인경이라는 지금의 계정을 만들기 전에도 필명을 쓸까, 본명을 쓸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쓰고 싶은 필명은 백운영이었다. 구름 운(雲)자에 그림자 영(影). 우연히 비가 그친 후 발견한 구름 그림자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문단에는 천운영 소설가가 있었다. 그녀는 천이고, 나는 백이어서 그 이름은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 백인경이라는 실명을 쓰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아직은 부담스러울 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괜찮아. 유명해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죽을 때 뉴스에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뉴스에 나오는 방법은 많지 않아?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위험하고 확실한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게 말고 시인으로 죽고 싶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져 있다면 내가 죽어도 누군가 한 명쯤은 내 시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 친구를 생각하며 시를 쓸 때는 다 쓴 후에 꼭 보내주었다. 이거 너 생각하면서 쓴 시야. 지금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애정 표현이다.
나는 가끔 네이버에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 아직은 블로그와 책 카테고리의 '서울 오면 연락해' 관련 컨텐츠가 가장 먼저 뜨지만, 뉴스란에서는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백인경 교수와 우산 건조기를 개발한 삼육대 백인경씨와 늘 경쟁하고 있다. 실용성으로 따지면 내가 제일 꼴찌인 걸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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