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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5 돛대

대산, 만해, 마로니에, 새얼, 개천… 나는 지금도 내가 10년 전 원고지를 놓고 온 백일장을 줄줄 욀 수 있다. 눈 앞의 목표가 뚜렷했던 시절이었다. 입상, 그리고 대학. 그것만 해결되면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던 때가 있었다. 일찌감치 내신을 말아먹은 나는 문예특기자 전형에 온 힘을 쏟아 부었지만 고3이 되어서야 겨우 백일장에 고개를 내밀었기에 수상경력이 한참 부족했고 읽은 시집도 부족했다. 결국 얌전히 수능까지 다 치른 후 ‘다’군에 지원했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반수해야지. 다른 더 좋은 학교로 가야지. 하며 시를 쓰다가, 술을 마시다가, 교수님께 대들다가, 선배에게 개기다가, 시를 찢기다가, 시를 찢다가, 그러다 어느 날 깨어나니 졸업이었다. 졸업 발표회 날 나는 단상에서 말도 못하게 울었다. 학교 축제 시즌이었고 졸업 발표회가 끝난 후 우리는 주막으로 몰려가 술을 마셔댔다. 문예창작과 주막은 자리가 금방 찼다. 결국 주막 뒤편에 박스를 깔고 앉아 먹다가 거기서도 눈치가 보였던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로 자리를 옮겨 캔맥주를 땄다. 밤 늦은 시간까지 조명은 환했고 시끌벅적했다. 어두운 가장자리에서 철 지난 노래를 듣다가 누군가 담배를 꺼냈다. 나도, 나도 하나만. 너도 담배 피웠어? 너도? 깔깔 웃으며 담배를 나눠 피우면서 우리는 졸업을 실감했다.


마지막 남은 한 개피 담배. 일명 돛대. 내가 다닌 문예창작과에서는 그걸 만개피만 피면 등단한다고 했다. 학교마다 개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문청들 사이 떠돌아다니는 미신 같은 거였는데, 그만큼 담배를 뻑뻑 피며 고뇌하고 괴로워해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사귀던 애인에게 이 이야기를 가볍게 말해주었었다. 그리고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울 만큼 애연가였던 그는, 그날 이후 언제나 내게 마지막 담배를 건넸다. 나는 피우지도 않는 독한 말보루레드를,그것이 사랑이라는 듯.나는 애인이 주는 사랑을 무럭무럭 피우며 한 시절, 따뜻하게 보냈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났던 날들을 떠올리자면 스물 세 살의 겨울이 보인다. 졸업과 동시에 모든 것이 칼로 자른 듯 끝나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밥도 안 먹고 수업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시만 썼다. 후배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언니, 그러다 죽어요, 억지로 떡볶이를 먹이고 널부러진 박카스 병과 핫식스 캔을 치워주었다. 이듬해 내가 투고했던 신춘문예의 어느 심사평란에서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덤덤하게 짐을 싸 서울로 올라왔고 매년 지독하게 가을을 앓으며 몰아 울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해 더욱 우울한 계절병이었다. 여름이 가고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원고 마감일이 마치 죽은 애인의 기일 같았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만 백석의 시를 찾았다. 변명은 계속 길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정도로. 어설픈 사람의 고집이 더 센 법이다. 나는 그랬었지, 가 아니라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십대의 마지막 계절을 하나씩 앞두고야 나는 스스로를 도닥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여름의 한가운데서 문득 가을을 예감하는 것을 왜일까. 해가 지기 전에 밖에 나가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해가 졌다. 두렵지 않을 거다, 하다가도 나는 매미를 한 마리 키우고 싶어한다. 12월까지 죽지 않게 정성껏 보살피고 싶어한다. 내가 피운 돛대가 몇 개피쯤 되었을까, 세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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